앙투안로랑 드 라부아지에(프랑스어: Antoine-Laurent de Lavoisier, 프랑스어 발음: [ɑ̃twan lɔʁɑ̃ də lavwazje], 문화어: 앙뜨왕 라부아지에, 1743년 8월 26일~1794년 5월 8일)는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공직자로, 18세기 화학 혁명을 주도하면서 화학사와 생물학사에 족적을 남겼다.[1]
연소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여 플로지스톤설을 폐기하면서 화학을 크게 발전시켰고, 산화 과정에서 산소의 작용, 산화나 호흡 간의 정량적인 유사점 등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화학 반응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을 확립하였으며 원소와 화합물을 구분하여 근대 화합물 명명법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화학에 정량적인 방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학자이기도 하다.[2] 또한 미터법 구축을 도왔고, 원소 목록을 최초로 광범위하게 작성하여 규소의 존재를 예측했으며, 1787년에 화학 명명법 개혁을 도왔다.[3] 그의 아내이자 실험 조수였던 마리안 폴즈 라부아지에는 그 자체로 명성 있는 화학자가 되었으며, 미터법 측정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그와 함께 작업했다.
라부아지에는 여러 귀족 위원회의 영향력 있는 위원이었으며, 세금 징수 조합의 관리자였다. 세금 징수 조합은 국가를 희생시켜 얻은 이익, 납부자가 알기 어려운 계약 조건의 은밀함, 조합 소속 무장 요원들의 폭력성 때문에 앙시앵 레짐에서 가장 증오의 대상이 된 조직 중 하나였다.[4] 이러한 모든 정치적, 경제적 활동을 통해 그는 자신의 과학 연구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조세 사기와 불량 담배 판매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과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구명 탄원에도 불구하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1년 반 후, 그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 무죄가 입증되었다.